김백철. (2025). 조선시대 전라도지역 고을의 재정지표 검토 : 지리지자료를 중심으로 . 전북학연구, 14, 83-131.
Series/Report no.
전북학연구; 제14집
Abstract
전라도는 조선시대 삼남지역 중 하나로서 불리면서 물자가 풍족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관련하여 각종 사료에서 재정지표의 도출을 시도해보았다. 여기에서는 지리지자료를 중심으로, 연대기, 고지도, 법전류, 관부자료, 문집 등을 두루 비교해보았다. 자료작성방식의 한계로 누락되거나 자료가 실전되어 추계치를 사용한 경우가 적지 않으나 대략 추세를 가늠하는 데는 유효할 것이다. 공식기록에 따르면, 15-18세기 호구는 최소 2만 4천에서 최대 32만으로, 인구는 최소 9만 4천에서 최대 122만으로 모두 약 13배 증가하였고, 전결은 원장부 기준 약 28만결에서 약 34만결로 약 1.2배 증가하였다.
이는 토지가 한정되어있어 최대 개간지의 면적은 극적으로 넓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8도 중 인구는 4위에서 3위로, 전결은 3위에서 1위로 바뀌었다. 고을의 위상도 변화하였다. 먼저 조정에서 공식적으로 부여는 읍격은 19세기초까지 단지 26%의 변동만 보였으나 경제적 지표를 대변하는 읍세는 19세기말까지 66%가 변화했는데 상승지속이 56%이고 상승후 일부감소 8%였다. 이는 인구ㆍ전결의 확장과 고을 지위변동이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대한제국기에는 경제적 성장을 군의 등급에 보다 직접 반영하였다.
전라도는 광활한 평야를 지니고 있어서 농업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18세기이후 전국 최다 전결을 보유하였다. 첫째 군액의 경우, 남자인구 대비 군액부담이 절반 미만인 고을이 62%에 달하고 넘는 고을조차 8%에 지나지 않았다. 둘째 전세의 경우, 4-6두 사이에서 부과되었는데 초과한 경우는 8%였고, 이러한 고을조차 소출액 대비 전세부담 비율은 0.9-2.1%에 불과했다. 셋째 대동의 경우, 12두를 준수하는 고을은 44%이고 약간초과 14%, 과다 12%이다. 그럼에도 소출량 대비 대동비율을 살펴보면 과다한 고을일지라도 2.5-3.3%에 불과하므로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넷째 환곡의 경우, 소출액 대비 비율은 1/10미만 44%, 1/3미만 26%로 상당히 안정적 이다. 따라서 생산력증가로 인해서 민의 부담이 경감되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농업생산력은 수전농업의 증가로 뒷받침되었다. 수전비중이 한전보다 높은 고을은 15세기 33%에서 18세기 95%로 높아졌다. 수전확대에 발맞추어 제언도 증설되었는데, 수전ㆍ제언의 확대는 장시의 폭발적 증가와 비례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산력의 증가는 다양한 과세가 부과되더라도 실제 부담률을 현저하게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여기에는 수전농법의 발달로 인한 농업·상업이 연동되어 발달하였기 때문이다.